
온 세계가 무대이며 온 남녀가 한낱 배우에 불과하다. 각자가 퇴장도 하고 등장도 하며 일생을 통하여 수많은 역할을 맡는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 의 2막 7장에서 시니컬한 제이퀴즈가 한 대사이다.
인생이 연극이라는 관점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로마의 페트로 뉴스로부터 시작된 이래 고대, 중세, 르네상스를 통해 일관되어 온 긴 전통을 가진 관념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이다.
우리는 회사원, 부모, 자식, 이웃으로 다양한 연기를 해야 하며 그때마다 상대방이 우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면을 써야 한다.
이러한 가면을 '페르소나 persona'라고 한다.
페르소나란 본디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역할과 비슷한 개념으로 쓰인다.
사람들은 회사에 가서는 회사원의 탈을 쓴다.
집에 오면 아빠와 남편의 탈을 쓴다.
교사의 탈, 경찰의 탈, 목사의 탈, 공무원의 탈. 이 세상의 탈은 수없이 많다.
대하는 사람에 따라 적당하다는 탈을 써야 하고 또 쓰고 있기 때문이다.
탈의 수는 사회집단의 종류만큼 많다.
우리의 관계 역시 페르소나라는 탈이 없다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페르소나란 자신의 진짜 얼굴이 표면화되는 것을 피하고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세상을 향하여 착용하는 것이다.
페르소나란 편의상 착용하고 있는 가면으로, 참된 자기 자신과는 다르다.
페르소나에 내려지는 평가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그리고 그러한 평가를 과신하다 보면 페르소나를 뒤집어쓴 자기가 진짜 자기인 줄 착각하게 된다.
그 결과 어디까지가 자신이고 어디까지가 페르소나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적인 자신의 성장은 멈추고 자신을 남의 시선에다 위치시키는 것만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제대로 된 관계가 이루어질 리가 없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잘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관계는 나의 행복을 위한 관계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관계일 뿐이다.
페르소나는 가정교육이나 사회교육을 통해서 형성되고 강화된다.
사람 된 도리로서, 직장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강조할 때 페르소나의 강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페르소나란 집단이 만들어 준 틀일 뿐이다.
그 사람의 진정한 삶 관계, 그리고 가야 할 길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가치관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잘 정립된 것처럼 보이는 가치관이라도 그것이 내가 가야 할 길, 그리고 참된 나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페르소나의 역할밖에 못 한다.
가치관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중요한 타자의 기대와 바람에 의해 가치관이 형성되지만 어느 시점에선가는 그것을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기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것에 질질 끌려다니다 보면 그것은 언제나 페르소나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가치관이 이 수준에 머물다 보면 결국 개인은 불행해진다.
평생을 자식만을 보고 희생하다가 자식들이 성장해 자기 품을 떠나고 나서 우울증을 겪는 주부, 직장에 모든 것을 걸고 일하다 퇴직한 후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 이 사람들 모두가 가치가 페르소나의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이런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사람들의 관계 역시 페르소나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제대로 된 관계였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이중의 상실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증상은 가치관 형성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람보다는 모범적인 사원, 헌신적인 부모, 효성 깊은 자식 등과 같이 가치관이 잘 정립되었다고 보이는 사람들에서 잘 나타난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기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남이 원하는 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재작년쯤 한 기러기 아빠가 친딸을 성폭행한 사건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부인과 딸의 해외 생활이 실패로 돌아서자 벌어진 사건이었다.
배신감과 박탈감에 사로잡힌 그는 딸을 조기 귀국시켜 3년간이나 성폭행했다고 한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보도를 보는 한, 이 기러기 아빠는 가치관이 확립된 것처럼 보인다.
그는 학원 강사의 수입으로는 송금액을 도저히 맞출 수 없어 아르바이트로 과외도 하고 부모, 친지에게 손을 벌리기도 했다고 한다.
보도에 나타난 이 기러기 아빠는 우리 사회에 흔히 있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모범적인 아버지상이었다.
부인과 가족을 위하여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기희생을 하는 전형적인 부친상이었다.
이런 식의 삶을 살아가는 부친은 우리 사회에서는 나름대로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문제는 가치관이 페르소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데에 있다.
나를 실현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질질 끌려다녔다.
이 기러기 아빠의 행동을 지배한 것은 자기의 가치관이 아니라 가족의 가치관이었을 뿐이다.
이 기러기 아빠가 페르소나를 넘어서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다.
설사 자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족들이 조기유학을 떠났고, 결국 그것이 실패에 그쳤더라도 그것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었다.
가치관이 페르소나 수준에 머물면 인생이 잘 풀려 갈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좌절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지금 우리 사회의 상당수는 앞서 말한 기러기 아빠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가치관이 확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페르소나 수준에 머물러 참된 자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삶이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그토록 소중하게 가꾸어 왔던 관계가 신기루였다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이런 절망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가면을 벗고 맨얼굴로 세상을 향하라.
그리고 자기의 맨얼굴을 보여주면서 관계를 맺어가고 유지하라.
지금 당장은 힘들지는 몰라도 이렇게 맺어지는 관계가 참된 관계이고 나의 행복을 위한 관계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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